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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고백장

나혜석의 글과 그림

나혜석을 처음 만난 건 화가로서, 한 전시회에서였습니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 줘도 항상 방긋 웃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 나혜석 그리고 그 아래, 유럽 풍경을 그린 네 점의 유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처음 보는 화가의 이름이었습니다. ‘이토록 선구적인 확신을 가졌던 화가는, 아니 여성은 누구인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그가 꿈꿨던 조선일까? 인형이나 노리개는 아니더라도, 지금 시대의 여성을 그가 본다면 흐뭇할까..
나혜석을 처음 만난 건 화가로서, 한 전시회에서였습니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 줘도 항상 방긋 웃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 나혜석
그리고 그 아래, 유럽 풍경을 그린 네 점의 유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처음 보는 화가의 이름이었습니다.
‘이토록 선구적인 확신을 가졌던 화가는, 아니 여성은 누구인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그가 꿈꿨던 조선일까? 인형이나 노리개는 아니더라도, 지금 시대의 여성을 그가 본다면 흐뭇할까, 아니면 아직도 안타까울까?’
이 책은 당시의 저처럼 나혜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 그리고 나혜석의 ‘화가’ 또는 ‘페미니스트 작가’로서의 일면에만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 나혜석의 삶과 생각이 압축된 자전적인 에세이 연작과 평생에 걸친 미술 작품 30점을 소개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3편의 에세이는 ‘작가’ 나혜석이 이혼 후인 1934~35년에 쓴, 그의 가장 문제적이고 논쟁적이며 자기고발적인 글입니다.
〈이혼고백장〉은 1934년 〈이혼고백장〉과 〈이혼고백서 속(편)〉이라는 제목으로 《삼천리》 8월호와 9월호에 2회에 걸쳐 발표되었습니다. 이 두 편의 에세이는 나혜석 인생 황금기였던 파리 시절의 스캔들로 인해 평생의 지기(知己)일 것이라 기대했던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3년 후 남편에게 띄운 공개 서한입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고 이혼에 대한 회한을 적고 있습니다.
〈신(新)생활에 들면서〉는 〈이혼고백장〉을 발표하고 나혜석이 사회적 지탄과 냉소를 받게 되자, 파리 스캔들의 상대자였던 최린에 대해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한 후 발표되었습니다. 그는 최린에게서 받은 합의금을 가지고 조선에서의 과거를 청산하고 파리로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는 그간의 고독한 투쟁에 대한 양가(兩價)적인 심경과, 주변을 향한 유언과도 같은 고별 인사가 담겨 있습니다.
나혜석은 선구적이지만 급진적이고, 사회적인 식견은 높았지만 인간적으로는 불완전한, 아직도 일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혜석 자신이 펜으로 적어 내려간 그의 생애와 사상을, 지금의 우리가 편견 없이 더 많이, 더 쉽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엮습니다.
글/그림 나혜석 (1896.4.18. ~ 1948.12.10.)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일제강점기의 작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유화, 판화, 조각 등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수필, 시, 단편 소설, 칼럼 등 많은 글을 남겼고, 특히 여성의 정조, 모성, 연애, 부부관계 등에 관한 혁신적인 발언을 남겨 조선의 1대 페미니스트 작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결혼 전에는 3·1운동에 가담하여 5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생전에 유일한 여성 서양화가로 주목받으며 경성(京城) 최초의 유화 개인전을 열고, 조선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여성으로서 그 기행문을 잡지에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해외 체류 시절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인해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남편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이혼고백장〉을 2회에 걸쳐 월간지에 발표합니다. 당시는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이라 해도 파격적인 이 사건은 세간의 논쟁을 일으키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스캔들 상대자에게 ‘정조 유린’죄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벌여 언론에 대서특필되기까지 합니다.
그의 대담하고 파격적인 행보는 보수적인 조선 사회에서 남성은 물론 여성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말년에는 불교에 의탁하여 사찰 등을 오가며 지냈습니다. 40대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양로원에 머물다가 행방불명됐고, 광복 이후인 1948년 한 시립병원에서 무연고자 시신으로 화장되었습니다.

엮은이 유재민
중국 상하이(上海) 화동사범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주중대사관에서 전문직 통역원으로 일했습니다. 17년간 출판사 에디터로 근무하며 200여 권의 종이책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적·공간적 흐름 속에서 역사와 인물을 탐구하는 여행에 애정을 갖고 있으며, 현재는 전자책 크리에이터로 인문·예술·어학 콘텐츠를 발굴·창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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